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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8.14) 광복 74주년을 하루 앞두고 '진정한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첫 번째 편인 '교육계와 언론계' 편을 작성했다. 그렇다면 광복절인 오늘(8.15)은 두 번째 편으로 '우리 생활문화 속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한 번 다루어 보겠다.

 

[화투, 딱지 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일제 잔재라는 사실 아시나요?]

우선 놀이문화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부터 살펴 보도록 하자. 명절에 흔히 '고스톱'이라 불리는 카드 게임을 하는데, 이 고스톱에서 사용되는 '화투'는 사실 일본의 카루타(カルタ)에서 유래되었다. 이 놀이에는 왜색 문화가 심하게 짙어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 대목이 수두룩한데, 1월 송학의 태양은 새해의 일출을 상징하고, 학은 가족 건강과 장수의 염원이 담긴 일본 전통 세시풍속을 상징한다. 2월 꾀꼬리는 '우구이스다니(鶯谷)'로 도쿄(東京) 지명에도 남아있는데, 꾀꼬리를 뜻하는 '우구이스(鶯)'와 매화꽃을 뜻하는 '우메(梅)'의 두운을 맞춘다. 3월 '사쿠라(桜)'는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이다. 여기에다가 7월 기러기와 봉황은 일본의 천황(天皇)권을 상징하며, 9월의 국화(菊)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부터 내려진 일본 풍습으로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왜색이 물씬 묻어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다음으로 딱지치기도 문제다. 딱지치기가 우리나라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1936년으로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과 맞물렸다. 일제는 한국인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내선일체(内鮮一体)'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동 걸기 시작했다. 이 시기 동안 우리 학생들은 우리말을 쓸 수 없었고 일본어만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일본인 교사는 학생들에게 딱지를 나누어 주며 "만일 누군가 조선말(=한국어)을 쓴다면 딱지를 한 장씩 뺏어서 와라."며 학생들을 협박했다. 또한 일주일 후 딱지 검사를 했는데 20장 모두 뺏긴 아이는 사정없이 일본인 교사에게 맞았다. (즉, 딱지놀이 역시 일제잔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화투

 

무궁화 꽃 놀이

 

 

여기에다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집에 왜 왔니' 등과 같은 놀이들도 또한 일제 잔재인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원곡이 일본 동요 '다루마 씨가 구른다(だるまさんが転んだ)'이며, '우리집에 왜 왔니'는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세종의 소리'라는 세종지역 인터넷신문에 따르면, "일본군이 외국을 침략한 뒤, 군인들의 성욕을 달래기 위해, 여성들을 성 노예로 끌고 갔다. 그것이 '우리집에 왜 왔니'이고, '꽃 찾으러 왔단다'에서 '꽃'은 여성을 뜻한다"고 밝혔다. (이 놀이는 일본군 성노예를 정당화시키는 군국주의 이데올로기가 농후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이런 놀이들을 7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일제잔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무심코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혈액형 테스트도 사실은 일제잔재]

여기에다가 심심풀이로 해 보는 '혈액형 테스트' 역시 일제잔재다. 2013년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의 논문을 들여다 보면, "일본이 조선의 열등성을 강조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ABO형 성격 차이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 일본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젖어 있어 진화한 민족일수록 A형보다는 B형이 많다는 독일식 이론을 따라 한국인보다 A형이 많은 일본인의 우월성을 강조했을 정도다. 정말 소름돋는다. (혈액형 테스트마저도 일제 잔재와 군국주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생활문화에도 일제 잔재가...]

이렇게 놀이문화와 혈액형테스트를 통해서 알아봤듯, 우리의 생활문화에도 일제잔재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민족의식이 투철한 몇몇 역사학자들과 깨어있는 일부 교수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주변에서는 이를 지금까지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여전히 일본제국주의 문화 잔재에 갇혀 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한다면 '태극기 달기'와 같은 단순한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문화 속에 남은 일제잔재를 씻어내는 일에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식민지잔재를 방치하고서는 진정한 독립국가가 될 수 없다. 교육계, 언론계, 생활 및 문화계는 아직도 일제 식민지 시대에 갇혀 살고 있다. 그들을 일제잔재라는 사슬에서 풀어 줄 때가 되었다. 비단 광복절뿐 아니라 매일 매일이 광복절이 될 순 없을까. [2019.8.15 D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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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8.15)은 제74주년 광복절이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고, 이로서 35년 동안 계속되었던 일제강점기도 막을 내렸으며,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해방이 다 된 지 74년이 지난 지금(2019년),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잔재들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일제잔재가]

첫 번째로, '배움의 공간'인 학교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찾아보도록 하자. (전에도 다룬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아침 시간에 하는 '애국 조회'나 '열중 쉬어, 차렷, 경례'의 경우에는 일본 제국주의 의식을 형식만 따와서 바꾼 것이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매일 입는 교복 역시 일제 잔재의 종류로 분류된다. (일제 강점기 남학생 교복은 '가쿠란(学ラン)'을 거의 카피했고, 여학생 교복은 '세일러복(セーラー服)'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해방 후에도 남학생 교복은 한동안 가쿠란과 비슷했으나, 1982년 자율화조치로 해당 교복 스타일은 없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학교나 학급의 교훈(校訓)・급훈(級訓)부터 학교를 상징하는 노래인 교가(校歌)까지(교가 문화를 가진 나라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외에는 없다.), 학교는 여전히 일제 군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갇혀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교복
일본의 가쿠란과 세일러복. 누가 봐도 일본 육군(현 일본 육상자위대), 일본 해군(현 일본 해상자위대) 제복을 본떠 만든, 군국주의적인 성격이 짙다.

 

학교 교육 이외에 언론계에도 일제 용어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기자가 경찰서를 취재하는 교육을 '사쓰마와리(察回り/실제 발음은 사츠마와리)'라고 부른다던가, 기자들이 현장에 남아서 근무하는 것을 '하리꼬미(張り込み/실제 발음은 하리코미)'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다가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손절해서 수정하는 '우라까이(정확한 표현은 裏返す/우라카에스)'라는 용어까지 버젓이 (기자들 사이에서) 방치되고 있다니, 정말 해방된 나라의 언론이 맞나 의심스럽기만 한다.

 

사쓰마와리는 누가 봐도 일본어다. 언론계에도 일제 잔재어가 수두룩하다니....

 

[얼마나 많은 일제 잔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가]

교육계와 언론계는 우리 사회 핵심 중추인데, 이들마저 일본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945년 해방을 맞았으나, 교육계와 언론계는 여전히 일제 식민지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해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남아있는 잔재는 여전하다. 그러니 침략자인 일본을 우방으로 떠받들고, 동족인 북한을 적대시하고, 북한의 문호개방을 비난하며, 일본 극우정권의 국제깡패짓에 대해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교육자, 기자들이 수두룩한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74년째' 마취당하고 있는 중이다. (내일[2019.8.15/광복절 당일] 2부가 계속됩니다.) [2019.8.14 D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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