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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9월 11일'하면 무슨 사건이 떠오르십니까? 아마 대부분은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알 카에다'라는 무장 테러집단에 의해 공격당한 '9.11 사태'를 떠오르실 겁니다.

그런데 9월 11일 사건은 2001년 9월 11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매파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감추려 하지만, 미국과 다국적 기업도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문제에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멀쩡했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군부와 미국 매파 정권, 다국적 기업의 '협작' 쿠데타로 무너진 '칠레 쿠데타'입니다.

 

2004년 칠레에서 제작된 1973년 9월 11일 칠레 쿠데타를 다룬 영화의 한 장면

 

그렇다면 칠레 쿠데타가 어떤 경위로 일어났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때는 1969년(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성향의 소아과 의사 출신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칠레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합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칠레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였던 아동 영양 실조를 해소하기 위해 분유를 무상으로 지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매파 집권세력과 CIA(미국 중앙정보부) 그리고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1971년 칠레 우유 농장을 거의 장악한 스위스 다국적 기업 네슬레 사는 칠레 정부와의 협력을 파기했습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당시 칠레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를 비롯한 미국의 매파들과 스위스의 네슬레(Nestle) 사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에게 포위되어 힘을 못 쓰게 되었고, 결국 1973년 9월 11일, 미국 중앙정보부(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와 결탁한 칠레 군부가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되었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고 군부 대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가 칠레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었고, 칠레의 빈부격차는 극심해졌으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혼란기에 빠져들었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군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피노체트 군부독재 체제는 1989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역시 미국과 다국적 기업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요. 미국 매파들과 다국적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쩡한 대통령을 쫓아내고, 자기들 편을 열심히 드는 군부독재자를 내세우다니, 뭐라 할 말이 없군요.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1990년 칠레에 민주정부가 다시 수립되면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안정을 되찾으면서, 부정부패 유산과 피노체트 군사독재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어 다른 남미국가들과는 달리 미래가 밝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일은 칠레 민주정부에 앞서 미국과 다국적 기업들이 했어야 할 일입니다. 1973년 쿠데타로 세워진 칠레 군부정권의 핵심 주축이 그들이었기에.....)

 

이 사건이 일어난 지 46년이 지난 2019년 현재, 미국의 많은 정치인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떠나 1973년 9월 11일 발생했던 칠레 쿠데타에 대해 아는 사람이나 참회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들 중에는 오히려 그게 잘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칠레 쿠데타에 대해 제대로 사죄하지도 않았습니다. (네슬레는 46년 째 칠레 쿠데타에 대해 한 마디의 사죄나 반성을 보인 적도 없습니다. 네슬레 보이콧 하는 게 정답입니다.)

어쩌면, 미국 매파와 다국적 기업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패권만을 챙기기 위해 그곳의 민주정부를 공격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이는 집단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