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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75년을 맞는 해다. 그러나 광복 75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나라는 일제잔재 공화국이다. 친일의 후예들이 학살자들의 후예들과 한통속이 되어 만든 당이 아직도 정치판에 군림하고 있고, 아직도 일제 잔재가 언어는 물론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을 정도로 이 나라 이 민족은 일제잔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작년 7월 일본의 경제 침략으로 인해 전 국민이 너도 나도 함께 '일제불매' 운동을 벌였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불매'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제잔재는 뿌리깊을 정도로 더 뿌리깊게 내려있다.

 

 

이러한 일제잔재는 나라 곳곳에 광복 75주년의 해인 2020년 현재에도 완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다. 일부 국공립 초중고에서는 친일파가 작사 작곡한 교가가 여전히 불러지고 있는가 하면, 강원도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역대 교장을 보여주는 사진에 일본인 교장 사진이 버젓이 실려 있을 정도다. 네티즌(누리꾼)들은 '기X띠'나 '야매'와 같은 순(純) 일본어를 버젓이 인터넷 공간(네이버, 다음, 페북, 트위터, 유튜브...)에서 주고받고 있고, 우리말글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신문, 방송사들조차 '간지난다'나 '기라성' 같은 일본어투 용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홍대 앞 거리는 일본풍의 간판과 건축물로 뒤덮여 '여기가 서울인지, 도쿄인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왜색문화가 지배하고 있을 정도로 이 나라는 여전히 왜색문화와 왜색잔재의 식민지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가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날이다. 그런 날인 만큼 곧 다가올 2020년 8월 15일에도, 이 나라에 사는 우리 모두가 일제잔재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여 왜색문화가 완전히 이 땅을 떠나는 그 날까지 우리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 왜색문화를 살펴보고 이를 없애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학교에서도 광복 75년의 해를 맞아 우리 삶 곳곳에 남아 있는, 교실과 학교문화 곳곳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왜색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학생과 교사가 함께 '일제잔재 청산'을 위한 역사 교육과 '왜색잔재 퇴출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왜색문화를 청산하지 않으면 진정한 광복도 없다.

 

2020년 3월 13일

어제(8.14) 광복 74주년을 하루 앞두고 '진정한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첫 번째 편인 '교육계와 언론계' 편을 작성했다. 그렇다면 광복절인 오늘(8.15)은 두 번째 편으로 '우리 생활문화 속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한 번 다루어 보겠다.

 

[화투, 딱지 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일제 잔재라는 사실 아시나요?]

우선 놀이문화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부터 살펴 보도록 하자. 명절에 흔히 '고스톱'이라 불리는 카드 게임을 하는데, 이 고스톱에서 사용되는 '화투'는 사실 일본의 카루타(カルタ)에서 유래되었다. 이 놀이에는 왜색 문화가 심하게 짙어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 대목이 수두룩한데, 1월 송학의 태양은 새해의 일출을 상징하고, 학은 가족 건강과 장수의 염원이 담긴 일본 전통 세시풍속을 상징한다. 2월 꾀꼬리는 '우구이스다니(鶯谷)'로 도쿄(東京) 지명에도 남아있는데, 꾀꼬리를 뜻하는 '우구이스(鶯)'와 매화꽃을 뜻하는 '우메(梅)'의 두운을 맞춘다. 3월 '사쿠라(桜)'는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이다. 여기에다가 7월 기러기와 봉황은 일본의 천황(天皇)권을 상징하며, 9월의 국화(菊)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부터 내려진 일본 풍습으로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왜색이 물씬 묻어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다음으로 딱지치기도 문제다. 딱지치기가 우리나라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1936년으로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과 맞물렸다. 일제는 한국인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내선일체(内鮮一体)'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동 걸기 시작했다. 이 시기 동안 우리 학생들은 우리말을 쓸 수 없었고 일본어만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일본인 교사는 학생들에게 딱지를 나누어 주며 "만일 누군가 조선말(=한국어)을 쓴다면 딱지를 한 장씩 뺏어서 와라."며 학생들을 협박했다. 또한 일주일 후 딱지 검사를 했는데 20장 모두 뺏긴 아이는 사정없이 일본인 교사에게 맞았다. (즉, 딱지놀이 역시 일제잔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화투

 

무궁화 꽃 놀이

 

 

여기에다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집에 왜 왔니' 등과 같은 놀이들도 또한 일제 잔재인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원곡이 일본 동요 '다루마 씨가 구른다(だるまさんが転んだ)'이며, '우리집에 왜 왔니'는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세종의 소리'라는 세종지역 인터넷신문에 따르면, "일본군이 외국을 침략한 뒤, 군인들의 성욕을 달래기 위해, 여성들을 성 노예로 끌고 갔다. 그것이 '우리집에 왜 왔니'이고, '꽃 찾으러 왔단다'에서 '꽃'은 여성을 뜻한다"고 밝혔다. (이 놀이는 일본군 성노예를 정당화시키는 군국주의 이데올로기가 농후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이런 놀이들을 7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일제잔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무심코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혈액형 테스트도 사실은 일제잔재]

여기에다가 심심풀이로 해 보는 '혈액형 테스트' 역시 일제잔재다. 2013년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의 논문을 들여다 보면, "일본이 조선의 열등성을 강조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ABO형 성격 차이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 일본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젖어 있어 진화한 민족일수록 A형보다는 B형이 많다는 독일식 이론을 따라 한국인보다 A형이 많은 일본인의 우월성을 강조했을 정도다. 정말 소름돋는다. (혈액형 테스트마저도 일제 잔재와 군국주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생활문화에도 일제 잔재가...]

이렇게 놀이문화와 혈액형테스트를 통해서 알아봤듯, 우리의 생활문화에도 일제잔재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민족의식이 투철한 몇몇 역사학자들과 깨어있는 일부 교수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주변에서는 이를 지금까지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여전히 일본제국주의 문화 잔재에 갇혀 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한다면 '태극기 달기'와 같은 단순한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문화 속에 남은 일제잔재를 씻어내는 일에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식민지잔재를 방치하고서는 진정한 독립국가가 될 수 없다. 교육계, 언론계, 생활 및 문화계는 아직도 일제 식민지 시대에 갇혀 살고 있다. 그들을 일제잔재라는 사슬에서 풀어 줄 때가 되었다. 비단 광복절뿐 아니라 매일 매일이 광복절이 될 순 없을까. [2019.8.15 D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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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8.15)은 제74주년 광복절이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고, 이로서 35년 동안 계속되었던 일제강점기도 막을 내렸으며,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해방이 다 된 지 74년이 지난 지금(2019년),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잔재들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일제잔재가]

첫 번째로, '배움의 공간'인 학교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찾아보도록 하자. (전에도 다룬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아침 시간에 하는 '애국 조회'나 '열중 쉬어, 차렷, 경례'의 경우에는 일본 제국주의 의식을 형식만 따와서 바꾼 것이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매일 입는 교복 역시 일제 잔재의 종류로 분류된다. (일제 강점기 남학생 교복은 '가쿠란(学ラン)'을 거의 카피했고, 여학생 교복은 '세일러복(セーラー服)'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해방 후에도 남학생 교복은 한동안 가쿠란과 비슷했으나, 1982년 자율화조치로 해당 교복 스타일은 없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학교나 학급의 교훈(校訓)・급훈(級訓)부터 학교를 상징하는 노래인 교가(校歌)까지(교가 문화를 가진 나라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외에는 없다.), 학교는 여전히 일제 군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갇혀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교복
일본의 가쿠란과 세일러복. 누가 봐도 일본 육군(현 일본 육상자위대), 일본 해군(현 일본 해상자위대) 제복을 본떠 만든, 군국주의적인 성격이 짙다.

 

학교 교육 이외에 언론계에도 일제 용어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기자가 경찰서를 취재하는 교육을 '사쓰마와리(察回り/실제 발음은 사츠마와리)'라고 부른다던가, 기자들이 현장에 남아서 근무하는 것을 '하리꼬미(張り込み/실제 발음은 하리코미)'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다가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손절해서 수정하는 '우라까이(정확한 표현은 裏返す/우라카에스)'라는 용어까지 버젓이 (기자들 사이에서) 방치되고 있다니, 정말 해방된 나라의 언론이 맞나 의심스럽기만 한다.

 

사쓰마와리는 누가 봐도 일본어다. 언론계에도 일제 잔재어가 수두룩하다니....

 

[얼마나 많은 일제 잔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가]

교육계와 언론계는 우리 사회 핵심 중추인데, 이들마저 일본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945년 해방을 맞았으나, 교육계와 언론계는 여전히 일제 식민지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해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남아있는 잔재는 여전하다. 그러니 침략자인 일본을 우방으로 떠받들고, 동족인 북한을 적대시하고, 북한의 문호개방을 비난하며, 일본 극우정권의 국제깡패짓에 대해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교육자, 기자들이 수두룩한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74년째' 마취당하고 있는 중이다. (내일[2019.8.15/광복절 당일] 2부가 계속됩니다.) [2019.8.14 DVS]

 

<여러분의 공감 하나가 DVS 논평에 큰 힘이 됩니다>

최근 오키나와(유구) 지역의 한 식당에서 '일본인 사절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문구가 붙어 있어 화제가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인 관광객의 매너가 해를 갈수록 나빠져 9월 말까지는 일본인 관광객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즉, 일본 관광객의 매너가 갈수록 나빠지기 때문에 한동안은 일본 관광객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문구가 나온 역사적인 배경을 한 번 살펴 보도록 하자.

 

<오키나와 식당의 일본 관광객 사절 공지>

 

[오키나와라고 부르지 말라: '유구(流球)'다]

사실 오키나와의 진짜 이름은 '유구(流球)'다. 오키나와, 아니 유구(流球)는 원래 일본과는 다른 엄연한 독립 국가 '유구국(琉球国)'이었다. 유구국은 동부 아시아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번성하던 개방적인 국가였다. (일본 본토가 폐쇄적이었던 데 비하면, 유구는 꽤 개방적인 편이었다.) 실제로 유구국은 1458년 제정한 '만국진량(万国津梁)'에서 자신의 국가적 위상 및 구실을 구체화했다. 그만큼 유구는 동부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국가임을 추구했다. 개방적이고 평화로웠던 유구는 1867년 일본 본토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강제병합되어 멸망하고 지금의 '오키나와(沖縄)'로 이름이 바뀌고 만다. 이 시기부터 유구인들은 일본 본토의 차별과 멸시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도중 발발한 '태평양 전쟁(1941~1945)' 시기 동안에는 많은 유구인이 간교한 일본군에 속아넘어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후 오키나와는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미국의 점령 하에 있었다가 (그래도 오키나와의 미국령 시기 동안[1945~1972] 미국은 일본과 달리 오키나와의 자치권을 보장했고, 도로를 비롯한 각종 시설도 건립하는 등 어느 정도의 '인간성'이 있었다.) 1972년 일본은 다시 오키나와를 편입시켰다.  (말이 좋아 편입이지, 사실상 '재(再)강탈'이다.) 이후 오키나와의 자치권은 완전히 소멸되었고, 오키나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가 일본에 동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더군더나 현재 미군 관련 문제와 소음으로 오키나와인들은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아직도 일본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일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식민지'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가 되려는 오키나와인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일본의 차별과 멸시에 맞서 일본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한 오키나와인들의 투쟁. 우리는 일본의 차별과 멸시를 거부하고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한 오키나와의 독립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오키나와와 대한민국]

이런 오키나와(=유구)의 슬픈 역사를 보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로 고통 받던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다른 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나라를 되찾았고, 언어와 문화가 일본에 동화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키나와는 그렇지 못하였다. (즉, 오키나와의 문화는 일본 본토의 문화에 거의 동화되어버렸고, 현재 오키나와 방언은 소멸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곳곳은 어떠한가? 35년간의 일제 식민치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지 않은가? (일제 식민치하 잔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남아 있다. 학교의 급훈들과 (이들의 원조는 '교육 칙어'라는 일본 제국주의 교육 지침이다.), 교복 문화(현재 우리나라의 교복도 갈수록 일본화되어가고 있는데, 이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영향과도 맞물려 있다.) 등 교육계 전반은 물론 정치판에도 남아 있는데, 수구세력이자 친일의 후예 새누리당[현 자유당] 이은재 의원은 국회에서 대놓고 '겐세이'라는 일어 찌꺼기를 써 국민들의 조롱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일제 잔재가 나라 곳곳에 수두룩한데, 이를 뿌리뽑으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하나도 없다. 이런 현실을 방치하다가는 오키나와의 사례와 같이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가 일본에 동화될 위기까지 갈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일제식민지 잔재 청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도록 하자. 일제잔재 방치하는 나라는 문화 대국이 될 수 없으며, 자주적 독립국가도 될 수 없다. 늦지 않았다. 바로 지금부터다. [2019.8.9 D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