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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7월)부터 전개된 일본의 경제 침탈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져 있다. 두 달 전(6월)부터 홍콩은 중국의 집요한 내정간섭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두 사례는 이 세상에 선한 강대국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가까운 사례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 그림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강대국이다.

 

 

[힘겨루기에 중독된 강대국들 : 그들은 돈과 힘을 위해 다른 민족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다]

이 세상에 결코 선한 강대국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동유럽 문제는 러시아의 팽창주의가 빚은 문제이며, 중남미 문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책임이 크다. 티베트, 위구르 문제는 중국이 원인 제공자이며, 한반도 문제의 책임은 일본, 미국, 중국 3국에게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확장경쟁이 낳았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문제는 미국의 책임이 있다.

이들은 힘 없는, 가난한 민족들을 탄압하고 수탈하여 부를 쌓았다. 미국 백인들은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북미 대륙을 강탈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부족들을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국경선을 그어 평화로웠던 아프리카를 분쟁의 땅으로 만들고 말았다. 중국은 국제 힘겨루기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위구르, 티베트를 비롯한 소수민족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으며, (중국의 티베트-위구르 탄압), 일본은 한반도를 수탈하고 한민족을 착취해서 부를 쌓아올렸다. (1910~1945 / 35년간의 일제강점기,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미국-소련 패권주의의 놀이터가 되었다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 일본, 미국, 중국 모두 남북한 국민들의 삶엔 관심이 없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동유럽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이를 파괴하고 말았다. (1968~1969 / 체코 민주혁명 '프라하의 봄' 탄압, 비단 체코뿐 아니라 헝가리의 민주화 혁명 역시 소련에 의해 짓밟혔고, 소련 붕괴 이후 2000년부터 러시아 본토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독재 치하에 있다.)

이들의 패권주의 본능은 21세기 들어서 가속화되었다. 심지어 특정 국가 문제를 놓고서도 그곳 민중들의 생존권은 강대국들에겐 안중에도 없다. (2014년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미국도, 유럽 연합도, 러시아도 모두 우크라이나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만 눈이 멀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가난과 질병, 극심한 빈부 격차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휘둘려 자기결정권을 잃어버렸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우크라이나 민중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즉 다시 말해서, 모든 강대국들은 선하지 않다. 오로지 돈과 힘에만 관심이 있지, 자기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국제사회의 힘없고 가난한 시민들에 대해서는 더 관심이 없다. 이게 강대국들이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 극복하기 : 민중이 주인되는 세계를 향해]

그렇다면,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에게도 이 사례들은 전통적인 약소국이나 중견국 문제는 그곳 국민들의 自決權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는 순리를 일깨워 준다. 티베트와 위구르 문제의 해결책은 티벳인과 위구르인 스스로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순리이다. 한반도 문제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로운 방식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전 국민이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끝내는 방안 역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중국도, 미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영국도 -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될 리 없다. 자칫하다간 이들이 강대국에 의존하는 '또 다른 식민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강대국(미국, 영국, 일본, 중국, 러시아, 프랑스)이 지배하는 '뒤틀린 세계 질서'를 바로잡아 민중이 주인되는 '바로잡힌 세계 질서'로 국제 관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국제관계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강대국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양성이 실종된 사회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 이제는 바꾸자. [2019.8.13 DVS]

 

<여러분의 공감 하나가 DVS 논평에 큰 힘이 됩니다>

한반도는 70년간 강대국들에 의해 둘로 쪼개졌고,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헐뜯느라 정신 없었다. 물론 최근 들어서 남북한 화합이나 협력을 강조하고 있긴 하나 여전히 남한과 북한 간에 남아있는 대립이 제대로 청산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세계 3대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모두 한반도에서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여 정작 한반도의 평화나 화합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다.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일본의 아베 총리,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한반도에서 이권 다툼을 벌이는 그들의 꿍꿍이]

그렇다면 왜 미국, 일본, 중국 등 강대국들이 그토록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늘 한반도를 탐내는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미국의 경우, 1950년 6.25 전쟁(1950.6.25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의 남한 침공으로 시작되어 1953.7.27 휴전협정 체결까지 3년간 지속되었다) 이후 남한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데다가, 한반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을 남한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로 이어져 2002년 중학생 압사사건이나 탄저균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으며, 이후 미국은 이러한 사안들을 망각하게 되었고, 2019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의 대부분이 그 곳에 의존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변인이 아닌가? - 왜 남북한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가?)

그 다음으로 일본인데, 일본은 2019년 현재도 남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공동체를 못살게 굴고 있다.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35년간 우리 민족을 고통스럽게 하였고,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못살게 구는 존재 역시 일본이다. 그들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도 없으며, 돈에 눈이 멀어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우매하게 쳐다보고 있다. (이들은 원색적인 망언에 열중하고 있다. 주로 독도 문제나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문제에서 망언과 막말을 쏟고 있다.) 오죽했으면 남북한 분단의 배후에 일본이 있다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랄까? (일본은 남북한 통일과 한반도 평화에 반대하는데, 이는 인구가 줄고 빚더미가 늘어 통일된 대한민국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이렇게 35년간 우리 민족을 못살게 군 일본을 우방으로 떠받드는 정치집단이자 친일수구세력의 대변집단 '조선일보(이들은 일제강점기 때 친일성향, 해방 후에는 친독재 성향, 속이구 선언 이후 친기득권 성향으로 진화했다.)'와 '자유한국당(=일본 자민당 대한민국 지구당[자유당])'이 70년 넘게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군림하고 있다니 (2019년 현재 민주당이 권력을 잡은 지금도 자유당의 파워가 너무 막강해서 탈이다.) 어쩌면 우리는 '일본의 48번째 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중국을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 역시 한반도를 자신들의 손 안에 넣으려고 미쳐버렸다. 일본이 독도를 뺏는 데 집중한다면, 중국은 이어도를 뺏으려 한다. (그들 입장에서) 바다를 지배하려면 이어도를 수중에 넣고, 이어도를 장악하면 한반도 패권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은 일본 못지않게 역사 왜곡을 일삼는데('동북공정'), 엄연한 우리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를 자기들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한 술 더 떠 미세먼지나 황사 등 환경 재난의 배후에도 중국이 있다. 아무리 중국이 빠르게 경제가 발전한 나라라 할지라도, 환경 의식에서는 유럽이나 미국보다도 못한 '환경 후진국'이기에 한반도가 미세먼지나 황사로 고통을 받아도, 그들은 자기들마저도 황사에 노출되어 가는 것을 모르고 있다. 여기에다 한 술 더 떠 북한의 의사결정은 중국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한 정부의 의사결정이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북한 정부의 의사결정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시 말해, 남북한 정부 모두가 외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뒤틀린 현실을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가?

 

북한 핵 문제를 풍자한 그림. 여기 나온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남북한 문제는 강대국들도, 남북한 위정자들도 아닌 남북한 민중들의 자발적인 결정권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헌법을 읽는 습관을 들여 한반도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사진은 김용택 선생님을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 '우리 헌법 읽기 국민운동본부'의 '손바닥 헌법책'.

 

[한반도는 일본의 것도, 미국의 것도, 중국의 것도 아니다 : 한반도는 남북한 민중의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남한과 북한 모두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수립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지도자들만의 노력으로는 제대로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주권의식을 갖도록 '헌법 읽기'를 통해 우리가 주권 의식, 주인 의식을 되찾는 것이다. 생각해 봐라.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인 미국도 시민사회를 통해 ('시민 교육 센터') 헌법 읽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라고 못 할 이유 없다. (즉, '헌법 읽기'는 민주국가라면 마땅히 당연시되어야 할 시민의 의무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1당독재로 '껍데기만 민주주의 국가'라 헌법 읽기 교육 자체가 없다.) 헌법을 읽는 것을 습관화함으로 한반도의 주인은 강대국들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이고, 대한민국을 넘어 남북한의 민초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의 노력으로만 가능할 뿐, 그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서 이룩하게 할 수는 없다.

잊지 말자. 한반도는 일본의 것도 아니다. 한반도는 미국의 것도, 중국의 것도 아니다. 한반도는 남북한 민중들의 것이다. [2019.8.6 DVS]

 

<여러분의 공감 하나가 DVS 논평에 큰 힘이 됩니다>

요즈음 한국콜마와 DHC가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콜마는 일본 식민지배 옹호성 및 여성 혐오성 영상을 직원들에게 강제로 시청하도록 하여 문제가 되었고, 일본의 DHC사는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면서 정작 자국에서는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극우 성향의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중인격성을 드러내어 국민들을 크게 분노케 하고 있다.

 

[윤리성을 완전히 버린 악덕기업 한국콜마와 DHC]

일단 한국콜마부터 보도록 하자. 한국콜마는 1990년 윤동한 회장과 일본 콜마가 합작으로 세운 법인회사로, 일본 콜마사는 한국콜마의 지분 12.14%, 지주회사 한국콜마홀딩스 7.46%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콜마 회장 사건은 국민들의 분노를 살 만도 했다. 직원들에게 대한민국을 비하하고 여성을 혐오하는 극우 유튜버의 영상을 버젓이 틀어놓게 하였는데, 이 영상의 내용을 보면 가관이다. "아베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지도자"라며 일본 편을 드는 노골적 친일(=일본 편향적) 망언에다가 "한일 갈등으로 경제가 부서져 베네수엘라처럼 여자들이 단돈 7달러에 몸을 파는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등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막말까지 필터링도 없이 다 드러냈다. (그들은 '아베의 일본'도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못지않게 쇄국주의 성향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한국콜마의 윤동한 회장

 

 

DHC는 한국콜마보다 한 술 더 뜨게 대놓고 우익성향을 드러낸다. DHC는 '대학번역센터(大学翻訳センター)'라는 연구소 대상 번역기관으로 시작하여 1983년부터 기초 화장품 통신판매업을 개시하였다. 이후 1992년 출판부문을 설립했고, 1995년 건강식품업에도 발을 들여놓더니, 급기야 2006년부터는 영화 사업부문까지 가고 말았다. 이 회사의 회장 요시다 요시아키(吉田嘉明)는 강성 우익 성향이자 노골적인 親아베 성향의 경영자로, 극우정당 '모두의 당(みんなの党)'에 8억엔을 빌려주었다고 수기에 버젓이 올렸다가 당대표 와타나베 요시미(渡辺喜美)가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요시다 요시아키 회장은 '재일교포들은 일본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므로 당신들 나라로 돌아가라'며 재일교포를 모독하는 인종주의적 망언까지 사이트에다 게재했다. (이걸 보노라면 일본 사회가 얼마나 인종차별적인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게다가 요시다 요시아키 회장은 여성에 대한 혐오 또한 드러냈다. 요시다 회장은 '여자는 임신하면 암컷이고, 암컷은 쓸모없다'는 무개념, 반인권적 망언으로 일본 양심진영의 분노를 불러왔다. 이렇게 대놓고 막말을 퍼붓고 망언하면서도 돈 버는 한국콜마와 DHC. 무개념 기업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

 

 

[한국콜마와 DHC를 보며 자본의 민낯을 생각한다]

한국콜마와 DHC의 사례를 보노라면, 소비자를 기만하고 여성을 폄훼하는 등 막가파식의 깡패짓을 일삼고, 노동자를 고통으로 몰아넣은 채 이윤만을 추구하는 데 급급한 자본의 민낯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한국콜마와 DHC 이전에도 금복주는 결혼한 직원에게 퇴사를 강요하여 문제가 되었으며, 넥슨은 <클로저스> 성우 김자연 씨가 여성해방 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김자연 씨를 쫓아내버렸고, 콜트기타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시킨 채 사죄는 커녕 13년 동안이나 침묵해 왔다. 비단 여기 나온 기업들만 문제가 아니다. 이윤의 무한 추구를 중시하는 자본의 본성 그 자체가 문제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이윤 창출과 무한 경쟁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 세상에 선한 자본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자본에 맞서는 '깨어있는 소비자'가 되어 자본에 장악당한 세상을 구출해 내어 우리사회를 소비자가 주인인 투명한 경제로, 여성이 존중받는 평등 문화로, 노동이 존중받는 가치 사회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 (즉 자본이 지배하는 물질주의에서 - 민중이 주인되는 공동체주의로!) 부디 한국콜마-DHC에 대한 불매가 일회적인 보이콧에 그치지 않고, 자본의 민낯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본에 장악당한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우리 사회를 지켜내는 한 줄기 씨앗이 되기만을 소망한다. [2019.8.12 DVS]

 

<여러분의 공감 하나가 DVS 논평에 큰 힘이 됩니다>

2017년 이후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 의식이 신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여전히 성 차별 문화가 남아 있다. 특히 21세기로 접어든 이후에도 1960~70년대에나 먹힐 법한 구시대적 여성관이 학교 현장에서 방치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남녀차별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남학생="진취성, 자아개발, 자기탐구", 여학생="고운 말씨, 고운 마음, 아름다운 맵시"?]

일단 학교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 교훈(校訓)부터가 문제다. 남학교(주로 남고)의 표어들을 보면 "진취적인 자아 개발, 학문적 자아 탐구, 정의롭고 창조적이고 씩씩하고 튼튼하고 건강한 학생" 등이 과반이며, 여학교(주로 여고)의 표어들은 "슬기롭고 알뜰하게, 순결, 착한 마음, 아름다운 맵시, 고운 말씨와 고운 마음" 등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을 조장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의 학교는 진취적인 여성상보다는 수동적이고 남성에 의존하는 구시대적 여성상에 더 익숙해진 셈이다.

 

<대한민국 학교에 진취적인 여성상은 없다>

 

어디 교훈(校訓)만 그럴까? 학교를 상징하는 노래인 교가(校歌) 또한 문제가 된다. 8월 3일자 <여성신문>에 따르면 한 여자중학교는 교가 1절에서 '정숙한 어진 꽃이 향기 머금고'라는 구절이, 인천 남동구의 한 여자고등학교의 교가에는 '목화꽃 순결함은 참된 빛 되고'라는 가사가 수정되지 않은 채 2019년 현재도 불리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교훈도 모자라 교가까지 수동적이고 남성종속적인 그릇된 여성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학교에서 진취적인 여성상을 찾아볼 수는 없다. 즉, 학생들은 21세기를 사는데 학교는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꼴이다. 그리고 그런 20세기식 문화에 익숙해지는 순간, 여학생들은 진취성을 잃고 수동적이고 남성종속적인 그릇된 여성관에 마취되는 셈이다.

 

[그릇된 여성상 주입시키는 학교, 이젠 바꾸자!]

이렇게 2019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는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수동적이고 남성 종속적인 구시대적 여성관을 21세기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으려면 학생들 스스로가 성차별적 학교문화를 바꾸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 못지않게 해로운 것이 바로 성차별적 학교문화다. 이러한 노력은 학생들이 스스로 나설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특히 교사가 학생들에게 성차별적 망언과 그릇된 여성관을 주입시키는 것을 학생과 시민사회가 함께 감시하여 구시대적 성차별적 문화에 물든 교사들을 학생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21세기에 20세기적, 시대착오적이고 수동적이고 남성종속적인 여성관을 가르치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그리고 그릇된 여성관을 타파하고 학교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를 바로잡는 것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몫이다. [2019.8.7 DVS]

<여러분의 공감 하나가 DVS 논평에 큰 힘이 됩니다>